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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누자비스 까는 릴레이 포스트.

우선 이거부터 읽으셈욧.

0. 도현형이 궂은일은 다 해주셨으니 난 트랙 하나하나는 안까고 편하게 가겠음요 ㅎㅅㅎ.

1. 샘플링은 창작의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청취라는 행위를 창작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샘플링 작법에서는 작자가 얼마만큼의 내공을 가진 리스너이고, 얼마나 음악을 면밀히 들어 좋은 소스를 컷해낼 수 있느냐가 표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이런면에 있어서 누자비스는 좋은 창작자라고 말할 수 있다. 누자비스의 소스들은 샘플링 작법을 사용해오던 기본의 음악 장르 틀 속에서 소비되던 음원들과는 확연히 차별화 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집요할정도로 편중된 분위기의 소스 컷은 원곡의 모음만으로도 '누자비스 스러운 음원'이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되었다. 선곡만으로도 그 사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능력은 결코 낮게 평가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샘플링이 갖는 두 번째 의미는 전통적인 창작 음악으로서의 의미가 되겠다.

2. 난 일본사회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무책임한 존경심을 들 수 있겠다. 일본인은 뭐든지 존경한다(표면적으로는). 그리고 그것을 멋스럽게 재연하는 데에는 천재적인 기술을 보여준다. 일본의 부흥을 이끈 제조업이 그랬고, 20세기 초 일본 대중 문화의 근간을 이룬 재즈가 그랬다. 이 존경심의 문제는 거기에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데 있는데, 누자비스의 샘플링은 이런면에서 대단히 일본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도현형이 지적한 바와 같이, 누자비스의 트랙들은 대부분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소스컷+드럼루프들의 병렬적인 나열이다. 이 트랙들은 마치 누자비스가 원곡들을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해서, 차마 그 뼈와 살에 손을 직접 대서 정을 쪼지는 못하고, 방 한가운데 모셔둔 채 나름 취향의 드럼비트를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하듯 올려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소스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거기에 손을 대는 책임은 지기 싫다는 식이다. 샘플링의 아름다움이라 하면, 그것을 애정을 가지고 면밀히 관찰하고, 크고 유한한 흐름을 군데 군데 막아 작고 무한한 흐름으로 바꾸며, 나름의 룰에 따라 쪼고 부수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새로움에 도전하는 모습에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누자비스의 트랙들은 오로지 유려한 피아노 샘플이라면 뭐든지 좋으니 듣기 좋은 부분을 따서 깃털같은 드럼을 얹어낸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원곡과의 치열한 신경전도, 자기의 목소리로 빚어낸 창작도 없다. 유령같은 그랜드 피아노가 연주자도 없이 기계적인 타건만을 음산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

3. 그의 들쭉날쭉한 트랙메이킹과 전반적인 앨범 프로덕션 수준을 보았을 때, Music is Mine이나 Battlecry같은 곡의 예는 그의 능력이라기보다 일생에 한번 정도 찾아오는 신의 계시거나 그냥 로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Metaphorical Music에서 한번 준수한 프로적션을 보여준 후 싱글들과 사무라이 참프루를 거쳐 Modal Soul에 이르면서 보여준 횡설수설은 충격적이었고, 속는셈치고 비싼 돈 주고 산 Hydeout의 두 번째 컴필레이션은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애초에 창작자의 그릇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부수고 만듦을 반복해야 하는 창작의 전장에서, 피아노를 사랑하고 플룻을 평화롭게(존나 서툴게 ㅅㅂ) 연주하길 좋아하는 세바준은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는 훌륭한 음악 애호가였고, 좋은 DJ였기에 그의 죽음은 안타깝다. 그런 의미들을 떠나 한 생명의 때를 잘못 찾은 스러짐은 언제나 슬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 좋은 음악가를 잃었다는 안타까움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진정 안타깝게도 그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창작자로서의 긍지와 자아를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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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0 00:24 2010/07/1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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