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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되고 싶어하는 당신을 위해 - 3. 왕도

3. 왕도


지금까지 소를 울타리 입구까지 몰아왔으니, 이제 울타리 안으로 소를 넣어보자.

만일 당신이 "DJ가 되는 데에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DJ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되든, 요즘 세상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이다. 돈과 시간, 열정.

하지만 말했듯이 이런 것들을 갖추어도 DJ가 될 수는 없다. 바로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측정할 수도 없고,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확실치 않은, 음악에 대한 애정이라는 졸라게 추상적인 녀석이 필요하다. 당신은 음악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가? 이것은 당신이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다음이 진짜 중요한데,

DJ는 아주 적극적인 청자(리스너)이다.

이것을 인식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의 소극적인 청자이다(리트머스 테스트가 분류하는 것처럼.퀘스토의 Voodoo리뷰를 다시 읽어보시라. 이 글은 내가 태어나서 접한 음악 관련 글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이다). 그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CD(혹은 MP3파일)을 구입하고, 그것을 즐긴다. 여기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부클릿을 외우고, 남들은 잘 모르는 죽이는 베이스라인을 풀어낼 줄 아는 베이스연주자를 찾아내고, 인터넷으로 음악 사이트를 찾아 해메게 되며, AMG를 번역하려고 낑낑대게 된다. 그리고 어떤 부류는 중고 레코드점에서 시간당 2kg의 먼지를 마셔가며 오래된 레코드를 하루에 30장씩 사게된다(DJ Soulscape형의 표현으로는 "능동적 감상주체" - 한자로 된 어려운 표현이라 피해 보려 했는데 적극적인 청자도 한자어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듣는 음악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축하한다. 당신은 DJ가 될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을 달성하였다.

방법론적으로 끼워맞추느라 단계적으로 조건이니 뭐니 하는 말을 썼지만, 사실 반대로 DJ는 음악을 좋아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생계의 대부분을 음반 컬렉팅에 쏟아붓지 않는다고 , J-Dilla의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DJ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거다. 다만 잘 하려면 "내공"은 필요하다는 거다. 음악적 지식이 짧고 얕은 사람은 당연히 셋(set, 믹싱할 때 트는 음반들의 모음을 말한다)에 넣을 음악이 곧 바닥나게 될 것이다. 방법론위주의 DJing교육이 부르는 폐해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DJ의 화려한 겉면에 혹해 턴테이블을 잡게 되지만 오래지 않아 자신의 얕은 감상폭으로는 이 바닥에서 오래 해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말 뿐이고, 실제로 DJ는 믹싱이지, DJ는 음악을 사랑해야 되요 같은 속알맹이 없는 소리만 지껄이게 된다. 웃기지 말아라. 뭔가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내가 짧은 글솜씨로 주절대면서 뒤짚어 엎으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그거다. DJ이기 때문에 음악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로소 DJ일 수 있는 거다.

DJing은 그냥 음악을 사랑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턴테이블을 더 잘 다루는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 비평을 쓰면서, 어떤 사람들은 냄새나는 중고 레코드를 뒤져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유행하던 시대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뮤지션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그 중에 음악을 듣기 좋게 섞어서 남에게 들려주거나 괜찮은 트랙으로 뽑아내서 새롭게 들려주거나 하는 사람들을 DJ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할 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에 이른바 업계의 "형님들"이 말씀하시는(그리고 우리가 진리처럼 떠받드는) 초심(혹은 기본)은 아마추어리즘을 말하는 것 같다. 프로페셔널 DJ로써 청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믹싱의 방법론, 스크래치 스킬 같은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나아가 절라 멋진 비트를 찍어내 앨범을 내는 것도 좋다. 허나 "DJ는 이래야지" 이지랄 해가면서 남을 상처입히는 짓거리는 그만 두었으면 한다. DJing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빨리 DJ가 되고 싶어서 안달나 선택하게 된 길이 결국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정말 DJ가 되고 싶다면, CD든 LP든 상관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레코드를 한장 사고, 부클릿을 열심히 읽고, 그 뮤지션에 대해 더 알고, 그를 더 사랑하고, 올바른 음악관을 길러라. 한 3-4년쯤 길게 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클럽에 가서 다른 DJ들이 어떻게 믹싱하나 잘 보고(옆에 반쯤 옷벗은 누나한테 관심쏟으면 아웃이다) Q-Bert의 DIY DVD를 시청하면서 작살나는 스크래치 스킬을 익히면 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DJ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by soloture. 06. 12
1차 포스팅 -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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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20:28 2006/12/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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