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봅니다
이미 해는 어슴푸레한 붉은 빛을 하늘에 남기며 사라져버린 저녁, 당신은 모처럼 퇴근시간에 맞추어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짧아진 해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는 서늘한 바람을 애써 코트자락으로 뿌리치며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의 경쾌한 “100 Yard Dash”가 귀가길의 기분을 들뜨게 해준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은 당신은 서둘러 이 디제이 미츠 더 비츠(DJ Mitsu the Beats)의 “Promise in Love”를 오디오에 걸어놓는다. 그리고 지친 몸을 잠시 소파에 뉘어 쉬려던 당신의 눈에, 불이 켜진 건너편 아파트가 들어온다. 그녀다.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녀는 확실히 당신이 기다려온 뮤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마침 귀가한 참인지 옷을 갈아입고 있다. 눈부실 정도로 황홀한 광경에 때마침 오디오에서는 앨 그린(Al Green)의 “What More Do You Want From Me”가 흘러나온다. 그러던 그녀가 문득 이쪽을 바라본다. 당신을 눈치챈 듯 하다. 당황하며 커튼을 닫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당신에게 이리 건너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디온 월윅(Dionne Warwicke)은 이런 때를 위해 “You’re Gonna Need Me”를 남겼으리라. 망설일 것이 무어 있을까. 등 뒤로 “I’d Rather Be With You”를 속삭이는 테리 칼리어(Terry Callier)의 목소리를 흘리며 단숨에 그녀에게 날아간다. 뜨거운 눈빛을 타고 서로의 감정이 흘러간다. 어디선가 글래디스 나이트 & 더 파이프스(Glays Knight & the Pipes)의 “Midnight Train To Georgia”가 들려온다. 그렇게 둘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하나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 당신은 잠에서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오는데는 약간 시간이 걸리지만 당신은 곧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디오에서는 어느새 로버타 플랙과 도니 하사웨이(Roberta Flack with Donny Hathaway)가 “Back Together Again”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녀의 아파트에는 이제 커튼이 쳐져 보이지도 않는다. 아쉬움. 너무나 강렬했던 꿈의 감정은 보통때처럼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당신은 짙은 냄새의 땅콩버터처럼 끈적이며 들러붙는 이 감정을 끌어안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창문으로 물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의 “I Wish It Would Rain”에 회답이라도 하듯, 가는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플레이 리스트
1. 100 Yard Dash - Raphael Saadiq ( The Way I See It, 2008, Columbia/Sony BMG )
2. Promise in Love - DJ Mitsu the Beats ( A Word To Wise, 2009, Planetgroove )
3. What More Do You Want From Me ( Lay It Down, 2008, Blue Note )
4. You’re Gonna Need Me - Dionne Warwicke ( Just Being Myself, 1973, Spy )
5. I’d Rather Be With You - Terry Callier ( What Color Is Love, 1973, MCA )
6. Midnight Train To Georgia - Gladys Knight & the Pipes ( Imagination, 1973, Buddah )
7. Back Together Again - Roberta Flack with Donny Hathaway ( Roberta Flack Featuring Donny Hathaway, 1980, Atlantic )
8. I Wish It Would Rain - Mayer Hawthorne ( A Strange Arrangement, 2009, Stones Throw )
/ 한상우 - LUEL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