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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의 습작 - 나인


2005년, 반지의 제왕 CG팀 출신의 애니메이터이자 단편영화감독이었던 쉐인 액커는 나인이라는 이름의, 약 11분짜리 애니메이션을 공개한다. 약 4년반이라는 기간동안 집에서 마야와 포토샵, 프리미어, 애프터 이팩트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이 짧은 애니메이션은 각종 상을 휩쓸고 아카데미 어워드 후보에까지 오르는 작은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4년 후, 쉐인 액커는 나인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새로 만들어 우리들 앞에 내놓게 된다.

나인은 많은 기대속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독특한 분위기의 아트워크는 기대감을 고조시켰고, 사실 뚜껑을 열어 들여다 본 나인의 세계는 기대치를 넘어서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품을 재주껏 활용한 헝겊인형들의 사물과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는 보는것만으로도 적잖은 재미를 안겨주고, 황폐화된 쓸쓸한 세계이지만 그 속에서 작은 인형들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귀엽고 즐겁다. 여하튼, 나인은 '보는 재미'에 있어서 만큼은 쉐인 액커라는 애니메이터가 가진 커리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퀄리티를 만족스럽게 보여준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이야기는 대단히 엉망이다. 러닝타임이 79분에 불과하다는 것은 하나의 영화로써 이야기의 짜임새가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암시를 줄 수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단순히 짧은 러닝타임을 넘어선 무언가의 결정적인 결여를 보여준다. 회수되지 않는 복선, 맥락없이 등장하는 이슈와 소재들. 너무 많은 주인공들은 짧은 러닝타임 속에 자신을 어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병풍이 되고, 시퀀스는 그냥 연기처럼 흘러왔다 어디론가 사라질 뿐이다. 개인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황당한 엔딩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예측이 불가능한 엔딩이 재미있으려면 그것이 반전이어야 할 터인데, 이건 반전도 아니면서 예측하기도 힘들고, 예측이 어려운 이유는 그냥 이야기에 아무 복선도 뭐도 없어서 그런거다. 덤으로 스탭롤까지 졸라 허접.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쉐인 액커가 이 기대감을 반이라도 충족시키려면, 다음에는 비싼 시나리오 라이터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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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21:07 2009/09/2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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