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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류에 대한 역감시 - 디스트릭트 9

주의 : 영화 디스트릭트 9에 대한 미리니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디스트릭트 9을 두번째 보고나오면서, 나는 이 영화를 세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세번째 보면서는, 네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

 영화를 통해 비추어지는 인간의 모습은 흥미롭다. 외계인의 모선이 맨하튼도, 시카고도 아닌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났다는 사실만큼이나 흥미롭다. 닐 블룸캠프는 영리하게도, 사이파이라는 창과 다큐멘터리라는 창을 이중으로 사용해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낸다. 영화 전체를 통해 적절하게 버무려지는 사이파이 클리쉐들은, 미지에 대한 경이와 공포, 이해라는 기존의 역할 - 21세기에 들어서는 진부하다못해 보기만해도 지치는 그 역할들을 버리고 전문가들의 코멘터리, 언론보도화면, 관료화된 외계인 관리체계등의 비인간적이고 시스템적인 접근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띄게 된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비추어진 인간은 폭력적이다. 비커스는 외계인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자 전담직원이지만, 그에게 외계인들은 멍청하고 폭력적이며, 고양이 먹이에 환장하는 정도의 존재들이다. 그들이 설마 인간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며, 결국은 그 외견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벌레'로 결론짓고 알을 불태우고, 새끼를 보며 개체수의 증가에 불쾌해한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속에서의 인류는 외계인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20년이라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힘적 우위에 서서 미지의 존재를 맞닥뜨렸을때 취하는 행동. 이 영화에서 비커스로 대변되는 인류가 외계인에 대해 보여준 이해도와 대처방식은 현실의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선 것들은 아닐 것이다. 비단 영화를 직접적인 메타포로 삼고 있는 디스트릭트 6의 예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태도는 인간이 미지와 조우할 때 어김없이 나타난다. 영화속에서의 인간은 외계인과 심지어 말까지 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크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며 자신들이 외계인들에게 하고 있는 행동은 불가피하며 피차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커스의 감염 이후 그의 친구들이 그의 연락을 받고 보여주는 태도 또한 흥미로운데, 이미 비커스를 '그들'로 취급하며,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야 관객도 비커스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 말이 넌센스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만, 나는 타인을 생각한답시고 배려하면서 정작 그 사람에 대해서 외면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알고있다.

여기에서 나는 소통의 결핍을 보았다.

영화는 인간과 외계인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간의 소통의 결핍에 대해서도 짚어낸다. 만화 라이어게임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대사가 있다.

무관심은 의심보다 더욱 비열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
좋은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그 결과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 자들은 남을 속인다는 자각이 전혀없어. 왜냐면 그 자들은 자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괴로워하게 될지 상상하기를 외면하니까. 완벽한 사고정지. 무관심상태의 극치지.
의심은 결코 악이 아니야. 진정한 악은 무관심이지.

영화에서 외계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있는 존재는 피켓으로만 등장하는 인권단체들인데, 그저 이래저래 피상적인 요소에 대해서만 불만을 늘어놓을 뿐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일말의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성이 완전히 탈색되었던 비커스가 감염되고 변이를 경험하면서 아내에게 느끼는 강렬한 그리움과 사랑, 크리스토퍼에게 보여주는 이해와 우정은 그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인간성을 회복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한 대가로 그는 인간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완전히 말소되고 만다.

D9에서 인류와 외계인의 유일한 공존은 나이지리아와 외계인집단간의 힘이 지배하는 관계라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외계인을 잡아먹다가 비커스까지 먹어버리려 드는 그들은 미개하고 혐오스러울지는 몰라도, 시스템적으로 외계인을 포획해 실험을 반복하는 MNU보다는, 적어도 소통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맺고있다는 점에서 외계인과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에게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3년후에 지구로 다시 돌아와 이 소통을 모르는 미개한 인류에게 엄마아빠라도 가르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발톱세운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것보다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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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22:17 2009/11/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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