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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라자 10주년 기념 한정판 구매 (절반의) 실패기

2008/11/14 11:30, 글쓴이 Soloture
 서기2008년11월14일. 과거 이 바닥에 큰 한걸음을 내딛었던 너드메이커가 새로이 몸단장을 하시어 친히 나무상자와 함께 다시 좀비들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한지 약 2개월째, 결전의 그날. 수개월간 네이버 황금가지까페를 음산하게 떠돌던 수백의 좀비들은, 갖 수능을 마치고 무덤으로 복귀한 수험생 좀비들이 스타트라인에 미적미적 들어서는 것을 보며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경쟁자가 몇명인지도 모른다. 모니터 앞에서의 외로운 싸움에서는 동료도, 친구도 없이, 언제나 내가 찾으면 그 자리에 있어주던, 수천번 수만번 호흡을 맞춰온, 키보드와 마우스, 메모리를 깨끗이 비운 OS뿐. 물러설 곳은 없다. 아니, 물러서서는 안되는 싸움이었다. 마우스를 쥔 손에는 땀이 흐르고, 평소에는 낼 리 없는 오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요는, 전투의 시작을 스산히 알리며 모니터 앞에 앉은 좀비들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전투일지

0700(동부시간 1700) 집에 일찍 들어와서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카드결제 프로그램을 설치. 알라딘과 인터파크는 해외마스터카드나 아멕스가 안되는 모양이라 일단 접고 그래24에 올인하기로 결정. 한양문고앞에서 밤부터 대기하고 있다는 좀비들의 정보가 들어왔으나, 물리적 거리는 지구 반대편이니 그들과 나의 리그는 다르다.

0900(동부시간 1900) 까페에 좀비들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시작. 글의 리젠속도가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게 빨라진다. 인터파크에 잠시 상품정보 페이지가 떴다가 사라짐. 회선속도가 불안해진다. 안그래도 느린 쌀국 인터넷이 한국의 광랜들에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운에 맡기는 수 밖에.

0950(동부시간 1950) 알라딘의 상품정보 페이지가 떴다. 동시에 인터파크의 예약구매 페이지가 전체적으로 소실됨. 슬슬 페이지 새로고침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함.

0959(동부시간 1959) 인터파크 페이지는 여전히 접속불능인듯 하다. 까페의 글 리젠속도가 급격히 감소. 갑작스러운 침묵은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킨다. 누가 나에게 아무 말이라도 해줘.

1000(동부시간 2000) Yes24에서 정확히 동부시간 오후 8시 00분 00초를 침과 동시에 새로고침을 한 후 구매버튼이 뜬 것을 확인. 서둘러 주문후 결제를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 이 시점에서 까페에 구매 성공자들의 보고가 확인되기 시작함. 재빠르게 두번째 시도. 인터넷이 느리다. 손이 떨려온다.

1010(동부시간 2010) 두번째 시도에서도 에러가 발생. 이미 느릴대로 느려진 인터넷은 숨쉬기 조차 힘들정도의 속도를 보여준다. 세번째 시도를 하려고 하니 품절메세지가 뜬다. 곧이어 알라딘, 인터파크에서도 품절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함.

1020(동부시간 2010) 알라딘과 인터파크에서도 시도해보나 품절. 레이나님의 나무상자 품절보고가 좀비들의 사기를 꺾어놓는다. 500질이 불과 20분도 안되어 동이 날 줄이야. 목표를 종이상자로 수정.

1040(동부시간 2040) 예스24 사이트는 여전히 느리다. 악전고투끝에 종이상자 결제를 하였으나 결국 예스24에서도 아멕스, 해외마스터가 결제가 안되는 것으로 확인. 무통장입금을 선택한 후 한국에 입금을 부탁함.

1047(동부시간 2047) 레이나님의 종이상자 품절 보고가 확인. 예스24의 종이상자판 결제가 동시에 확인되었다. 한양문고로 직접 구매를 하러 떠났던 좀비들이 하나둘씩 전장에서 복귀, 보고가 올라온다. 이로서 1000질의 이영도 친필사인 양장본 세트는 판매가 종료.

전투가 끝난 후의 까페는 전장에서 복귀한 좀비들의 환호성과 절망의 탄식이 교차하며 기묘한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예스24가 30명분의 추가주문을 실수로 받아버렸다는 뒤늦은 소식은 몇몇의 좀비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떠나게 하며 잠깐의 긴장감을 조성했지만, 그들 또한 나와는 다른 리그에 있는 자들. 결제완료 확인 후 긴장속에 굳어버린 손목을 풀며 잠시 머리를 기댔다. 뒷머리를 스치는 익숙한 느낌.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맴돈다. 그래, 익숙한 느낌이다. 11년전, 시리얼, 새벽. 네크로맨서의 애니메이트데드를 기다리며 어둡고 축축한 무덤속에 누워 시리얼의 글목록을 우두커니 쳐다보던 그 때의 느낌. 타자의 등장에 환호하며 그날의 연재분을 순식간에 읽고 침대에 몸을 누이며 느꼈던 기분좋은 해방감. 그때 같은 밤을 공유하며 무한정으로 공급되던 기쁨을 함께 맛보던 동료 좀비들은, 지금 내 옆에, 환호에 차, 비탄에 차, 그렇게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있다.

우리는 여전히 10년전 네크로맨서의 주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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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4 11:30 2008/11/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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