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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The Quiett을 지지하지 않는다.(3)

4. 그렇다면 정당하다는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질문을 보겠습니다. 위 인용란 두 번째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 질문에서 Q씨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음원을 돈 주고 구입해서 샘플링 하시오] 되겠습니다. 실제로 Q씨는 직접 구입한 CD음원 이외에도 구입하지 않은 mp3음원을 사용해서 곡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음원은 공개하지 않는다 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두 사람 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Q씨의 대답은 동문서답일 뿐 더러, 질문자 또한 초점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음원을 돈 주고 구입함으로서 샘플링의 정당성을 세워라? 흥미롭군요. 눈에 보이는 개념인 법적인 정당성도 아니고, 음악적인 정당성을 돈을 지불해서 세우라니요. 돈 주고 구입하지 않은 음원이라고 해서 원작자에 대한 존경심이 동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너무 물질주의적인 의견이 아닐까요.
또한 Q씨의 의견을 보면, LP샘플링과 디지털 음원 샘플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일단, 기본적으로 동문서답입니다. 이 답변은 mp3 불법 다운로드 음원을 사용한 샘플링 제작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예술혼 운운하는 감정적인 호소뿐이죠. 샘플링을 배우는 데 얼마나 어려웠건, 그걸로 브레익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렵건, mp3 불법 다운로드와는 1도트도 관계 없습니다).
LP샘플링을 하는 이유는, 제작자가 바이닐(LP)을 사용해 DJing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제작상의 이점은 많습니다. 따로 처리를 거치지 않아도 아날로그 특유의 음색을 구사할 수 있고, 직관적인 턴테이블의 조작방식에 따라 음악적인 시도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방법론적인 이점도 있습니다. 만은, 가장 큰 이유는, [가지고 있는 게 LP인데 뭘] 입니다. LP만의 낭만과 애착이라고요? 90년대에 십대를 살아온 우리가 LP에 대해 무슨 낭만과 애착이 있을까요. 오히려 카세트 테이프라면 몰라도요. 힙합의 향수와 오리지널리티는 LP보다는 드럼머신에서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샘플음악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LP나 CD나 똑같이 소리를 담고 있는 매체인 이상, 굳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창작 가능성을 제한하는 행위라고까지 말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창작 재료의 범위를 더욱 넓혀주는 mp3음원은 어떨까요? 조금 다른문제가 됩니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음원을 제공받는 경우, 자신이 만든 샘플 음악을 돈 받고 파는 뮤지션의 경우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거야 말로 날도둑질이 되겠죠. 그게 얼마나 잘 만들어진 음악이건, 불법 다운로드는 뮤지션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것이 제작에 들어간 노력이나 고민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또한 Q씨는 제작에 사용된 음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글에서는 밝히지 않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분명히 Q씨는 CD자켓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음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원 믹스CD같은 것도 공연 때 배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본인의 말로는 [음원은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 무슨 모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Q씨 본인이 음원 공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무려 Pete Rock의 말을 빌어서 주장하고 있으니까요(그는 Pete Rock의 대단한 팬이며, 그의 방법론은 PR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PR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한명이고, 그의 음악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PR의 말도 그러할까요?). 절대다수의 샘플음악뮤지션들은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저작권료를 지불한다는 의미는, 법적으로는 원작자의 경제적인 권리를 존중한다는 뜻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샘플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 존경심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샘플링 해 만들어진 음악은 샘플링한 사람만의 음악이 아닙니다. 그 음악에는 원작자의 혼이 담긴 작곡과 연주가 담겨 있겠죠. 샘플링 음악은 원곡에 절대적으로 기댄 작법인 이상, 잘 알려지지 않은 원작자를 발굴해서 알려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만약 잘 알려지지 않은 원작자의 곡을 샘플링해서 음반을 발매하고 음원은 숨긴다면, 원작자의 음악은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어렵게 찾아내서 어렵게 획득한 기법으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원곡은 공개하지 그렇지 않냐, 라니, 이 무슨 심보랍니까.
물론 많은 존경받는 뮤지션들이 음원 공개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CD자켓이 어려우면(샘플 클리어 할 돈이 없으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음원 공개를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까요?

음원을 공개하는 것이 정당화의 유일한 길도 아니고, 옳은 길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음원을 공개하지 않는 행위가 샘플링 기법의 정당성에 역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적어도 샘플링이라는 기법을 사용하는 자로써, 노력을 존중받기 위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그 기법을 음악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리 샘플링 음악가가 예술혼이 하늘을 찌른다 한들, 열정이 한반도를 홀랑 태워먹을 정도로 이글거린다 한들, 음원을 사용해서 베토벤처럼 음악을 만든다 한들, 원곡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 매체에 관해서건, 저작권법에 대해서건, 음원 공개건 - 깊은 성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샘플링은 절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샘플링은 기성 음원을 사용하는 음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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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2 20:22 2007/01/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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