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의 거렁뱅이같은 회선사정으로 날아갔던 포스트 복구 합니다.
J-Dilla 비트의 숨겨진 이야기
우 리는 큐팁에게 비트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팁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해줄 수 없었고 그 대신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그게 바로 제이디였다. 우리는 제이디라는 인물 자체가 존재하는지조차 믿을 수 없었다. 팁의 본명이 조나단 데이비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제이디를 큐팁의 예명쯤으로 생각했다. 큐팁은 비트를 몇 가지 받아왔고 우리는 "Runnin'"과 “Drop"을 들었다.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비트였다. 제이디는 LA로 SP1200을 가져와서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 비트들로 곡을 완성했다. 그는 어떻게 손을 대도 멋진 비트를 뽑아냈다. 나는 그에게 Vince Guiraldi의 음반을 주었는데 그는 그걸 가지고 ”Splatittorium"을 만들어냈다. 나도 그 때쯤에는 포기하고 “그럼 그렇지” 하고 그의 비트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Fat Lip과 나는 제이디가 먼저 찍어놓은 “Runnin'" 비트를 가지고 실제로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Fat Lip은 자신이 원하던 분명한 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비트를 받아가지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기왕 제이디를 기용했으니 그의 의도대로 곡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내가 그 때 몸싸움까지 벌이며 비트를 사수하지 않았다면 ”Runnin'"은 전혀 다른 곡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 Tre Hardson
“Players” Slum Village Fan-Tas-Tic Vol 2 (Goodvibe 2000)
원 곡의 샘플에선 사실 “players"라고 하는 게 아니라 ”Claire"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의 기교를 발휘해서 우리가 샘플 위에 “players"라고 덧씌워 그렇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게 디스곡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디트로이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진짜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이야 서로 잘 지내지만 사실 이 비트는 Proof의 그룹에게로 가려던 것이었고 걔들은 당시에 딜라의 비트를 받아 앨범을 내더니 완전 거만해졌고 터프한척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 화가 났기에 디스곡을 쓰고 있었지만 Wajeed가 듣더니 ”야 걔네는 앨범이라도 냈지 너희는 뭔데?“ 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길로 딜라의 집으로 달려가 작업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2주 후에 Vol.1 앨범이 나왔다. 그들의 거만한 태도가 우리를 자극한 셈이었고 결국 우리는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 ”Players"를 만들었다. 나중에 Proof도 디스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귀띔을 해준 것 같다.
- T3
“Don’t Nobody Care About Us” Phat Kat “Dedication to the Suckers” 12-inch (House Shoes 1999)
우 리는 ‘라임 치킨’이라는 곳에서 만났는데 그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나와서 랩을 할 수 있는 무대였다. 우리는 92년쯤에 만난 후 가까워졌고 슬럼 빌리지가 나오기 이전에 내가 랩을하고 딜라가 곡을 쓴 1st Down을 선보였다. 우리는 Payday 레이블에서 싱글을 냈는데 그 당시에 Jeru the Damaja, Jay-Z, Showbiz & AG가 모두 동시에 앨범을 냈다. Q-Tip은 비트 테입을 발매하고 말이다. 일이 어떻게 그렇게 꼬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녹음을 해나갔고 어떤 레이블에서 앨범을 어떻게 발매할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딜라는 사람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에서 사운드를 뽑아내서 곡을 만들었다.
내 가 랩을 한 몇몇 비트들이 딜라의 믹스 테입으로 유출되어 나갔다. 힙합계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하며 모든 사람들이 그의 비트를 얻으려고 달려들었지만 딜라는 자신의 크루에게 줄 귀중한 것들은 따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딜라의 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후부터 우리는 안전한 장소에서 녹음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의 가장 신선한 비트를 받을 수 있었다. “Dedication to the Suckas" 싱글은 저녁 8시에 작업 시작해서 11시에 뽑아낸 곡이다. 우리는 비트를 틀어두고 전화로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랩을 좀 던져보고 가사를 완성한 다음에 작업실에 가서 녹음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의 작업 속도는 정말 빨라서 그냥 농담이나 주고받다가 곡이 하나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즐겁게 곡을 만들었을 뿐이다.
- Phat Kat
“Get Dis Money” Slum Village Fantastic Vol 2 (Goodvibe 2000)
우
리의 작업 과정에선 늘 잡음이 들려왔다. “Get Dis Money" 같은 경우 배경에서 계속 잡음이 나서 앨범 발매 2주
전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드럼 프로그래밍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딜라는 메트로놈 같은 기계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귀로 들으면서 약간 거친 비트를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그건 완전 미친 거였다. ”Get Dis Money"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틴이 가사를 세 번이나 고쳐야했다는 점이다. 나와 딜라는 그의 가사에 대해 굉장히 까다롭게 굴었다. Vol.1과
Vol.2 앨범을 잘 들어보면 사실 바틴은 곡의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만 지껄인다. 결국은 그것이 의도인 것처럼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원래는 그런 게 아니었다. 바틴이 자꾸 주제에서 벗어나자 딜라는 진짜 화가 났다. 팬들이 바틴을 사랑하는 건 알지만
당시에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는 그냥 아무 얘기나 하곤 했으니까. 곡은 돈을 좇는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주제였는데 바틴은
갑자기 자기 가족 얘기를 하지 않나 아무튼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만 계속 해대서 우리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3번의 가사를 다시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딜라는 최종 버전에서 우리가 쓴 가사를 택했고 바틴은 곡의 끝부분으로
밀려났다.
- T3
“Nag Champa” Common Like Water for Chocolate (MCA 2000)
LWFC 앨범을 작업할 때 한 달에 두세 번은 디트로이트로 날아가야 했다. 그곳이 제이디의 원래 작업실이자 그가 자라난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바로 슬럼 빌리지의 앨범이 탄생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 루츠와 함께 제이디를 찾아갔다. 당시에 우리는 늘 Nag Champa 향을 피워놓고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서 제목을 따기로 했다. 나는 슬럼 빌리지의 앨범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Nag Champa"는 앨범에서 처음인가 두 번째로 완성한 곡이었다. 처음에는 코러스를 넣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좋은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T3를 함께 데려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T3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마무리까지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아이디어를 주었고 제이디가 그걸 듣더니 함께 노래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 멋졌다. 사실 제이디는 싱어로서 앨범을 내려고도 했다. 우리는 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LA에서 함께 지내면서 많이 나누었다.
- Common
“Little Brother” Black Star Music From and Inspired by The Hurricane (MCA 2000)
2000 년 당시만 해도 나는 제이 딜라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슬럼 빌리지나 ATCQ, 커먼과 함께 작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모스 뎁은 비트 테입을 가져와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몇 곡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 중 하나는 모스와 Mack 10, 팻 조가 참여한 스프라이트 광고에 쓰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 떤 뮤지션들은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모든 세션들을 믹스하길 원하지만 모스는 그냥 비트 테입을 들으면 ‘이 비트 좋다’ 하고 곡을 고르는 편이었다. 때문에 딜라와 같은 프로듀서와의 작업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의 비트들은 너무나도 완벽해서 모스도 듣자마자 “이런 게 내가 원하던 사운드야” 라고 말하곤 했다. 모스가 비트를 스튜디오로 가져가서 간단하게 보컬을 입혔고 우리는 그 위에 질 스캇-헤론이 노래를 불러줬으면 했다. 일단 모스가 필요한 부분의 노래를 불러놓고 우리는 그와 연락을 취했다. 그는 스튜디오에 도착하더니 낮잠 좀 자야겠다며 세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 그 후 그가 녹음을 했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당시 캐피톨 레코드의 웬디 골드스타인이 와서 이 곡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녀는 모스가 노래한 버전만 가져갔고 다음 날에 질 스캇-헤론이 다시 노래를 부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를 스튜디오에 데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곡이 믹스테입으로 유출되는 바람에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그건 딜라가 믹싱 상태를 들어보지도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 는 Quality 앨범을 작업하기 전까지는 제이디와 일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디트로이트에 가서 그의 비트를 고르고 프랭크 앤 댕크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당시에 루츠가 유갓미로 그래미 후보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나는 TV로 그래미 시상식을 보고 있었고 제이디는 지하실에서 비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하실에 대고 ‘지금 커먼하고 루츠 나온다!“ 라고 소리쳐주었다. 커먼과 루츠는 제이디와 가깝게 지내며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계속 비트만 만들고 있었다.
- Talib Kweli
“Didn’t Cha Know” Erykah Badu Mama’s Gun (Motown 2000)
나 는 디트로이트에 가서 제이디의 트랙을 몇 개 들어보고는 반해버렸다. 커먼이 나를 그의 작업실로 데려가서 자리를 비켜주어 딜라와 나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의 지하실 벽은 음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딜라는 내가 그 중에서 음반을 골라줬으면 했다. 나는 잘 정리된 음반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Tarika Blue라는 뮤지션의 음반을 하나 골랐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음반의 첫 트랙은 ‘Dreamflower'라는 곡이었는데 듣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나는 계속 그 곡만을 듣다가 딜라에게 이 곡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베이스 라인의 작은 부분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나를 지도했고 직접 내 손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잠시 작업실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딜라는 'Dreamflower'의 드럼 중 일부분을 이미 샘플링 해놓았고 나는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우~ 헤이~‘ 하는 멜로디를 떠올렸고 며칠 동안의 작업 끝에 곡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의 집에 편안한 차림으로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는 지하실에 앉아서 내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내 가 받은 딜라의 곡들은 그가 다른 뮤지션들에게 준 것들과는 좀 다르다. 베이스가 더 강한 편이고 프리퀀시도 분명 많이 다르다. 그의 작업실은 분명 그의 세계였지만 그는 내가 그 세계로 들어가도록 허락해주었고 결국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냈다. 내 생각에 그는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그의 공간을 허락하며 자유롭게 작업을 했을 것 같다. 그는 너무나도 창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 가지만 배워도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항공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매우 과학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딜라는 하나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다.
나 는 늘 그를 고문하곤 했다. 나는 커먼과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커먼이 우리 둘만을 작업실에 남겨두면 딜라는 부끄럼을 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꼬리를 치는 장난을 하곤 했다. 커먼이 나가면 나는 그에게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라고 유혹을 하곤 했다. 그러다 커먼이 들어오면 나는 딴청을 피웠다. 딜라는 커먼이 나의 이런 행동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미치려고 했다. 결국 커먼은 내게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했다. 딜라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대부분 내가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고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 Erykah Badu
“Eve (remix)” Spacek “Eve” 12-inch (Blue 2000)
스 페이섹 결성 초기부터 나는 제이디의 곡들을 듣고 있었다. 언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치 제이디는 오래전부터 음악계에 존재해온 인물 같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의 곡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가 매우 소울풀한 태도로 음악에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곡의 타이밍이나 느낌이 정말 그러했다. 게다가 코드 구성에서 나타나는 그의 완벽한 귀는 그를 다른 힙합 프로듀서들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당신이 그가 어떤 음반에서 무얼 샘플링 했는지를 알게 되더라도 그건 그의 프로듀싱에서 단지 일부분의 느낌만을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늘 뮤지션으로서의 사명감을 지니고 작업에 임했으며 그가 신디사이저와 드럼 키트를 다루는 방식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작업을 같이했던 때는 그가 스페이섹의 초기 싱글인 ‘Eve'를 리믹스 했을 때이다. 그는 그 리믹스에서 대단한 스킬을 발휘했다. 그 곡을 듣고 많은 리스너들이 스페이섹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팬들도 물론 제이디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 Steve Spacek
“Hold Tight” Slum Village Fantastic Vol 2 (Goodvibe 2000)
“잘 들어, 이게 내 마지막 가사야. 이 곡이 끝나면 나는 사라질 거고 이제 슬럼 빌리지가 나를 이어받게 될 거야.“ - Q-Tip "Hold Tight"
큐 팁은 당시에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결국 우리는 정말로 예상외의 방식으로 이 곡을 작업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냥 뉴욕에 큐팁의 가사를 받으려 간 거였는데 그는 은퇴를 결심하고 있어서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모두가 슬럼 빌리지를 ATCQ와 비교하고 있었기에 장점보다 단점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슬럼 빌리지와 ATCQ는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팬 층이 비슷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가사는 ATCQ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늘 좀 더 거리와 흑인에 가깝고 철학적인 가사를 추구했다. 그러나 뉴욕에 있는 녀석들은 우리를 까칠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와 ATCQ를 비교하지 않았다면 일이 좀 더 부드럽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딜라는 Vol 2 앨범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었는데 이러한 일들이 생기면서 결국 슬럼 빌리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 T3
“Soul Power” Common Electric Circus (MCA 2002)
우 리는 비트들을 엄청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일렉트릭 서커스 음반에는 실리지 못했다. 이미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Soul Power'는 그 출발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제이디에게 음악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에 우리는 모두 스테레오랩이나 라디오헤드,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제이디는 내가 완전히 색다른 음악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면 그는 내가 설명했던 것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곡들을 들고 돌아왔다. 우리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그가 베이스라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의 작업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치 제이디가 마법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였다. 곡의 드럼 프로그래밍은 이전의 어떤 곡들과도 확연이 다른 것이었고 그는 한 음반에서 “Soul Power!"라는 보컬 부분을 샘플링 했다. 그걸 듣고 나는 이 곡의 방향을 결정했다. 제이디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어떤 것이든 그걸 실현해내는 능력을 지닌 프로듀서였다. 그는 악기를 다룰 줄도 알았고 샘플을 사용할 줄도 알았다. 그는 정말이지 완벽한 뮤지션이었다.
- Common
“Keep It Comin’” Frank N Dank 48 Hours (unreleased 2003)
“Keep It Comin’”은 MCA를 통해 발매될 48 Hours 앨범을 위해 녹음하던 곡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마침내 껍질을 깨고 나와 세상에 진출하려는 참이었고 그 곡은 앨범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곡이다. ?uestlove가 드럼을 담당했고 앨범의 모든 음원들은 라이브로 연주한 것이었다. 전에 샘플로 만들어놓은 버전도 있었는데 딜라는 모든 사운드를 라이브로 녹음하길 원했다. 그 음반이 딜라의 존재를 만든 것이다. 모두가 제이디를 알고 있었다. 제이디는 모든 것들을 샘플링 했지만 딜라는 악기로 직접 연주한 사운드를 가지고 작업했다.
- Dank
“Champion Sound” Jaylib Champion Sound (Stones Throw 2003)
챔 피언 사운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제이립 음반을 위해 딜라가 보내준 곡들 중에서 가장 먼저 귀에 꽂힌 것이 바로 이 곡이었다. 나는 그가 그 비트를 고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보내준 비트 CD중에서 가장 더티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트랙은 차를 타고 가면서 듣는 듯한 기분으로 완전 달리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딜라의 가사는 그 곡을 더욱 하드하게 만들었고 특히 ‘웟! 웟!’ 하는 컨셉트는 정말 최고였다. 그 부분이 없었다면 곡의 느낌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그 곡을 공연할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관중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나는 가사를 읊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더로니어스 몽크 스타일로 박자만 맞추며 플로우를 타면 되었다. 제이립 앨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다. 사람들에게 너무 이른 느낌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챔피언 사운드를 공연하곤 한다.
- Madlib
“As Serious as Your Life (remix)” Four Tet “As Serious As Your Life” 12-inch (Domino 2003)
음 반사에서 Rounds 앨범에 들어갈 곡을 리믹스해줄 뮤지션 중 특별히 원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즉각 제이디라는 답변을 주었지만 당시에 그는 버스타 라임즈 등과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과연 내 앨범과 어울릴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매니저와 연락을 취해서 음악을 보내주었고 몇 주 후에 그가 작업을 시작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것도 매우 적절한 페이로)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나는 리믹스의 결과물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한 번 그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제이디가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아픈 상태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일단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이 흘러갔고 제이디 측으로부터 다시 한 번 작업물을 그의 어머니의 집으로 가져다줄 수 있냐는 요청이 들어왔다. 제이디의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가 그곳에서 회복을 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의 상황을 잘 몰랐기에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다시 그에게 자료를 보내주었다. 사실 그 이후로 시간이 더 흐르자 나는 제이디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전화가 오더니 마침내 제이디가 리믹스한 CD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노래를 부르고 길티 심슨이 랩을 한 곡이었다. 그는 굉장히 헤비한 비트를 골랐고 길티 심슨은 곡 내내 멋진 랩을 선보였다. 그가 나의 인스트루멘탈에서 제목을 따서 후렴으로 만든 부분은 너무 좋았다. "As Serious as Your Life"는 60년대 프리 재즈에 대한 교과서라 할 수 있었고 딜라는 콜트레인이나 아일러에게 받았던 느낌들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에게 이 트랙에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 말해주지도 못했다. 그의 죽음을 접했을 때 나는 정말로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 Kieran Hebden
“Nothing Like This” Jay Dee Ruff Draft EP (Mummy/Groove Attack 2003)
나 는 Ruff Draft EP를 좀 늦게 구입한 편이었다. 그 앨범을 듣고는 한동안 그 존재에 대해 잊고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 LP를 사도 립을 해서 아이팟이나 CD로 듣곤 하는데, 하루는 인터넷에서 누가 그 앨범을 립 해놓은 것이 있기에 다운로드 받았다.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예전에 ‘랩이 아니네...’ 하면서 지나쳤던 트랙을 발견했다. 난 그 곡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제이디가 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신경 쓰지 못했다. 곡의 끝에서는 샘플만이 흘러나왔는데 나는 그 부분이 어떤 루프인지, 무슨 샘플이었는지를 20분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음반에서 그 부분을 샘플링 했는데, 제이디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이었다. 그는 뻔한 브레이크는 결코 샘플링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브레이크 바로 앞이나 뒷부분의 음원들을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그 곡에서 쓰였던 샘플은 끝내 알아낼 수 없었다. 몇 달 간이나 그 문제로 끙끙 앓았지만 결국엔 포기했다.
- Just Blaze
“Reunion” Slum Village Detroit Deli (Capitol 2004)
많 은 사람들이 이 곡을 딜라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곡의 프로듀서는 블랙 밀크이고 딜라는 그냥 랩만 했다. 원래는 나와 Young RJ가 딜라의 집으로 가서 앨범에 참여해줄 것을 설득하려고 했다. 우리는 몇 곡을 함께했는데 딜라는 그 곡에 랩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원래는 나와 딜라, 바틴, 엘지가 모두 랩을 하기로 했었는데 당시에 바틴은 슬럼 빌리지에 참여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빠졌다. 나와 엘지가 가사를 다 썼는데 딜라가 가사에 “rep mo’ D than 12 Eminems” 라고 썼고 그걸 듣더니 엘지가 “나도 진실을 말해야겠다. 사람들은 T3가 바틴을 쫓아낸 줄 아는데 사실은 그가 우릴 떠난 거니까” 라고 말하고는 “unlawful demons" 라는 가사를 썼다. 그로부터 일주일 쯤 지나서 엘지가 바틴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한 번 곡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바틴은 이번에도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사실 나는 딜라와 슬럼 빌리지의 재결합 앨범을 내자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 일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마지막을 어색하게 끝내게 되어 화가 났다.
- T3
“Dollar” Steve Spacek Space Shift (Sound in Color 2005)
나 는 헐리웃에서 솔로 앨범을 작업했고, 내가 살던 곳은 딜라와 커먼이 살던 곳과 가까웠다. 우리는 그의 집에서 만나서 떨을 피면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의 분위기는 정말 초현실적이었다. 나와 매니저, 레온 웨어가 오후 내내 같이 놀았던 것이다. 나는 제이를 런던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함께 논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 앨범 잘되라고 선물 하나 줘” 라고 말했고 그는 “지금 준비된 게 없는데” 하더니 DAT 머신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테이프들을 막 넘기고 다시 테이프를 교체해서 막 넘기다가 빌리 폴의 노래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날 쳐다보더니 바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예-예-예-”하는 보컬이 들려왔고 그 순간 나는 바로 이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좀 더 함께 놀고 떨도 좀 더 피우다가 가사를 쓰기 위해 매니저와 나는 그곳을 나섰다. 가사를 다 쓰고, 두 개의 노래를 가지고 편집을 거듭한 끝에 “Dollar"는 완성되었다. 그 날 오후가 내가 제이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정말 천사처럼 지구에 내려온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만큼 겸손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천사임에 분명하다.
- Steve Spacek
“Lightworks” J Dilla Donuts (Stone Throw 2006)
나 는 제임스가 LA로 오기 전에 비트 CD들을 몇 개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넛은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그의 프로젝트였고, 그가 미시건에 있는 클린튼 타운십에서 지내며 진행했던 “Dill Withers" 프로젝트의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음악 세계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는 앨범을 사러 나갔다가 들어와서 작업하고 다시 앨범을 사러 나가고 하는 식이었다. 제임스는 매일 집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아침을 차려주고 디트로이트에 돌아와 내 일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가서 그의 점심과 저녁을 차려주곤 했다. 제임스는 특별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아무튼 그의 식습관은 참 특이했다. 게다가 그는 식사 사이사이에 15종류의 약을 챙겨 먹어야 했다. 대신에 그는 브라우니 선대를 매일같이 먹어대며 자신을 달랬다.
나 는 LA에 완전히 이사를 오기 전까지 도넛 앨범이 제작 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 중일 때 그 앨범에 실릴 곡들 중의 하나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건 디트로이트에서 제임스의 친구인 하우스 슈즈가 방문했을 때였다. 제임스가 투석 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에 나는 그의 곡을 몰래 들어봤다. 그런데 제임스는 내가 곡을 들었다는 걸 알고는 엄청 화를 냈다! 그는 내가 완성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듣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매 비트마다 특색이 존재하는지, 더 손댈 부분은 없는지를 꼼꼼하게 챙겼다. 내게 특별하게 들렸던 곡이 바로 “Lightworks"다. 그건 정말 대단하고 특별한 곡이었다. 그것은 고전 음악과 상업 음악,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한데 합쳐놓은 것이었다.
- Maureen Yancey (mother of James Yancey)
“Stop” J Dilla Donuts (Stones Throw 2006)
나 는 Dionne Warwick의 “You're Gonna Need Me"를 어셔의 ”Throwback"에 샘플링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딜라가 같은 곡을 "Stop"에 사용했다. 그가 죽기 전에 앨범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내게 “딜라가 너 엿 먹이는 거야?” 라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니었다. 나는 같은 곡이 사용되었다는 걸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원곡을 들어보면 그 앨범에서는 샘플링 할만한 음원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힙합 음악에서는 이런 일들도 벌어지곤 한다. 딜라가 어셔의 곡을 들어봤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Just Blaze
“Love” J Dilla ft Pharoahe Monch The Shining (BBE 2006)
BBE 에서 내게 연락을 해와서 샤이닝 프로젝트에 참여해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당시에 그는 투병 중이었기에 우리는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적은 있었다. 나는 보통 프로듀서와 직접 만나서 녹음을 하는데 디트로이트에서는 Denaun Porter와 작업을 한 적은 있지만 딜라와는 함께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이 곡은 서로 인터넷으로 파일을 주고받으며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내게 몇 개의 비트들을 보내왔고 내가 이 곡을 골랐다. 매우 소울풀한 곡이어서 곡의 방향 그대로 노래와 랩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제이디가 힙합뿐만 아니라 네오 소울과 알앤비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Pharoahe Monch
“Jungle Love” J Dilla ft MED & Guilty Simpson The Shining (BBE 2006)
나 는 2001년에 제이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가 나의 단골집에 자주 나타났고 하우스 슈즈가 서로 소개를 시켜주었다. 소개를 받은 다음 날 우리는 바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고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솔로 곡들을 작업했다. 그건 우리가 "The Verdict EP" 앨범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제이립 앨범에 실린 “Strapped"가 우리의 곡이었고 Four Tet의 "As Serous As Your Life”도 그렇게 작업한 곡이었다. 나는 제이로부터 비트 CD를 받아 집에 가져가서 듣고는 내가 좋아하는 트랙을 골랐다. 나는 비트 3개가 필요했는데 그는 CD 3장(비트 30개)을 내게 주어서 매우 고르기가 힘들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딜라가 죽은 이후로 카리엠 리긴스가 샤이닝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내게 연락을 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은지를 물어왔다. 나는 물론 좋다고 대답했고 그는 바로 “Jungle Love" 비트를 보내주었다. MED가 먼저 가사를 쓴 곡이었지만 나는 그의 가사에 어울리게 내 가사를 작업했다. 그의 랩이 매우 와일드하기에 나도 그에 맞췄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녹음 과정도 매우 힘들었다. 딜라의 죽음이 새롭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요즘도 문득문득 그런 느낌이 든다. 그저 내 친구를 위해서 그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은 채 랩을 하고 싶었다. 그 프로젝트는 딜라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을 반영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 Guilty Simpson
원문 : The Fader
번역 : 이용훈 (http://yhfac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