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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ing Forever - Common (2007, Gef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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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사러가기]


진정성의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부제 : Electric Circus의 리뷰일지도 모르는 Finding Forever리뷰


노예해방 이후 아프로-아메리칸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다. 1차 대전으로 전 세계가 실질적인 이상과 가치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가진 흑인들은 이데올로기적 혼란에 빠지는 일 없이 그들의 역사를 써왔다. 그리고 그 강렬한 투쟁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흑인음악은 무섭게 발전해왔다. 그들은 그들의 괴로운 현실을 음악으로 표출해왔고, 음악으로 투쟁해왔으며, 음악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어왔다. 가사등의 직접적인 표출은 없었지만 블루스, 재즈, 훵크에 담긴 메세지는 그들을 차별하고 억누르는 이 세계에 대한 외침이었다.


힙합에서의 MC의 역할은 이런 맥락속에서 찾을 수 있다. MC는 그 시작은 어찌되었건, 대변자로써 성장해왔다. 재즈나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들의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흑인음악의 흐름은 또다시 빈민가 거지들에게서 시작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춥고 배고팠으며 그만큼 차가운 현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MC들의 '힘'은 바로 그 현실에서 나왔다. 수많은 MC들이 써온대로, 그들은 마약에 쩔어 얼마 안되는 임금으로 하루살이를 하며 경찰을 엿먹이고 살아왔다. 이런 부정적인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며 퍼블릭 에너미나 N.W.A, 런디엠씨가 전설이 되었고, 반대로 이 현실을 담담히 묘사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찾아낸 De La Soul이나 ATCQ는 네이티브 텅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던 아프로-아메리칸들이었지만, 90년대 들어 점차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90년대 골든에라를 이끌어가던 힙합 뮤지션들은 물론 여전한 빈민가 태생에 어려운 어린시절을 극복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지만, 바로 그러한 성공자들 덕에 흑인들의 삶이 나아지기 시작해 버린 것이다. 더이상 흑인들은 배고프지 않고, 차별에 고통받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차별은 존재하고 배고픈 흑인들도 있지만 흑인 여성 국방장관이 존재했었던 현재에는 더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프로-아메리칸의 정체성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들이 미국사회에서 한 명의 구성원으로써 인정받음에 따라 인류 전체가 쟁취해왔던 자유와 평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일원으로까지 올라서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더이상 약자가 아니고 오히려 강자의 위치에 서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을 괴롭히는 세상따위는 이제 없어졌다. 90년대 갱스터랩의 상업적인 성공은 이런 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거의 반발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2pac이 몇백만장을 팔아치운다고 해도 기존에 그들이 에너지를 얻어오던 역사는 이미 끝났고, MC들은 전부 개점 휴업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아니, 할 이야기는 있었지만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해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한 흐름이었다. 전 세계가 포스트모던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근대사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던 것이 아프로-아메리칸의 사회였고, 흐름에 따라 포스트모던의 파도가 이쪽에도 몰아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기원에서부터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을 배제한, 극히 포스트모던적인 특징을 지니고 시작된 힙합음악이 전통적인 가치인 투쟁과 극복의 영광을 그 내용에 담아왔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모순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최근의 퀘스트러브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블랙쏟 또한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블랙 쏟은 그의 스타일에서 마지막 MC라는 것을 아셔야 돼요. 사람들을 불편한 위치로 몰아넣는 역할이었는데 이제는 MC의 기준이라는게 바꼈으니까요. 그는 배틀 랩을 하던 시절부터 랩을 공부해왔습니다. KRS-One 시절이죠. 그런 랩이 영원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캐릭터를 원합니다. 제이지는 악동이 개과천선한 캐릭터죠. 릴존의 캐릭터가 어떤지, 버스타 롸임즈의 캐릭터가 어떤지, 에미넴이 얼마나 미친놈인지, 50센트는 갱스터였고, 그런것들을 사람들이 다 알죠. 시장은 이제 MC보다는 캐릭터를 원하는 추세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우연히 뛰어난 랩 실력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제이지가 그렇죠. 우리가 공연을 할 때 마다 우리는 매번 다툽니다. 제가 "다른 소절 해, 이거 내가 좋아하는 곡이란 말야"하고 말하면 그는 "안돼 그건 관객들한테 전해지지 않을 거야"하고 반박하는 식이죠. 그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대단한 공연을 했죠, 그 공연 중에 "이 공연을 진정한 MC들에게 바칩니다"하는 컨셉 또한 존재해서 그는 두 곡 정도를 그런 스타일로 소화했어요. 그런데 그 때만큼은 관중들이 유일하게 자리에 앉더군요. 그러자 제이지가 등을 돌려 저를 바라보면서 윙크하고는 "거봐 내가 뭐랬어."라고 했습니다.

블랙 쏟은 자신이 이제 MC와 배틀 랩에 대해 더 이상 가사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 그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의 작사 과정에서 롸임을 줄이면서 천천히 나아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적기 시작했죠. Phrenology가 블랙 쏟의 그러한 시도가 반영된 첫번째 앨범입니다. 그리고 The Tipping Point가 쏟에게는 또 한단계의 성장이었죠. 그는 더이상 허풍섞인 가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번 앨범은 아마도 쏟의 가장 개인적인 앨범이 될 거에요. 저조차도 그가 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된 것이나 그런 이야기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평소 삶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그는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uestlove : Game Theory 인터뷰중에서
번역 이용훈
출처 imm

그가 말한것처럼 이젠 MC들이 투쟁해야 할 상대가 명확하지 않다. 아니, 명확하긴 하다. 이젠 MC들은 그들 자신과 싸워야 한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이고, 진정성의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투쟁. 현대에 들어서 오리지널리티라는 말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는 사실은, 진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던 MC들(그들의 real shit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돌이켜보라)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에 똑똑한 사람들은 벌써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었다. 제이지가 갱스터랩의 죽음 이후 Puff Daddy가 완전히 망쳐놓을 뻔한 커머셜 힙합을 구제했듯이.

존나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은데, 덤불은 그만 쳐대고 원래 하려던 커먼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커먼이 어떤 음악을 해왔고 어떤 인간이고 다 검색하면 나오니까 찾아보시고, 중요한 것은 Electric Citcus다. 그는 이 앨범을 발매하면서 자신이 새로운 핑크 플로이드처럼 되기를 원했다고 말했으며, 사람들이 커먼 하면 이제 혁신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EC를 발매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MC가 그 가치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하다(그렇게 보면 LWFC는 그가 MC라는 자각을 가지고 발매했던 최후의 앨범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C발매는 어떤 분기점이었다. 하지만 EC는 부진한 판매량을 보이며 실패했고 평단에서도 기대했던 만큼의 평가를 얻지 못했다. 커먼은 혁신적인 음악을 생산하는 뮤지션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실패했다고 판단한 듯 했다. 그는 바로 다음 앨범에서 칸예 웨스트와 손잡고 Be를 발매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Be는 성공적이었고, 과거의 전설이던 커먼은 Be앨범으로 인해 현대의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Be앨범은 포스트모던의 흐름에 좌절한 과거의 인간이 나름의 관점에서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그는 여전히 빈곤한 흑인들의 생활상이나 뒷골목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하고 긍정적인 꿈에 대해 노래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이미 진정성은 없다. 있으면 웃긴거다. 커먼은 중산층가정에서 자란 미국인이지 뒷골목 니거들의 대변자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사실 그딴거 필요없다는 것을 커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복제한, 오리지널리티라는 중력에서 벗어난 새로운 커먼을 만들어냈고, 영리하고 센스있는 칸예 웨스트는 그런 새 커먼을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었던 듯 하다.

Finding Forever도 마찬가지이다. 이 앨범은 철저하게 Be의 연장선상에 있다. 디테일한 사운드적인 변화와, 앨범 전체를 덮고 있는 딜라의 그림자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그는 진정성이라는 요소를 잘 포장해 새로운 커먼의 완성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칸예 웨스트의 프로듀싱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궤도에 오른 최정상급 프로듀서이며, 그 방향성에 문제가 있어서 경제적이지 못한 창작활동을 하고있다고는 쳐도 이미 딜라나 No.I.D와 비교하는 것이 쓸데없는 소모논쟁이 되어버릴 정도로 성장한 뮤지션이다. Finding Forever의 완성도는 걸출하며, 무엇보다 그는 커먼이 직접 선택한 새 프리모인 것이다. 그것이 커먼의 결정이고 의도라면, 그것은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힙합은 죽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과거의 망령과는 다르다. EC라는 비석이 떡하니 서있는 이상 아무리 부드럽고 소울풀한 앨범이라고 해도 Be와 Finding Forever는 마냥 평화롭고 이지리스닝한 앨범이 될 수는 없는거다. 이 두 앨범은 커먼의 자기파괴의 흔적이고, 스스로 피를 짜내 만든 어마어마한 고통의 집결체인 것이다. 그가 만약 EC를 내지 않았다면, LWFC다음이 바로 Be였다면(if라고 해도 그럴리는 절대 없었겠지만) 나는 Be앨범을 비난했을 것이다 - 내가 이 앨범을 상당히 좋게 들었고, 또 지금도 좋아하긴 해도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게임에서 성장한 부드러운 투사이다. 그가 찾고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명확하게 다가오는 몇 가지 사실은,
그의 딸은 니모를 찾았다는 것과, 그는 새 프리모를 찾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새 커먼을 찾은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그 커먼 나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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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18:28 2007/09/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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