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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를 발매함에

http://soloture.tumblr.com/post/33554428429/words-on-the-ep


- 사춘기는 아니지만, 항상 스스로에게는 왜 사는가에 대한 진부한 질문을 항상 던지며 사는 편입니다. 가끔 느끼기에 내가 딛고 있는 발판을 스스로 쪼아 부수는 행위같기는 해도, 반대로 딛고 설만한 내 땅을 갖고 싶다는 속물스러운 물욕의 발현이기도 하죠. 딱히 살아갈 근거로 삼을만한 나름대로의 자의식을 가질만한 가치라고는 가져본 적은 없고, 실제로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라고는 쫀쫀하고 지저분한 자존심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날부터, 행동함에 있어 자존심에 앞서는 작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근거를 가지고 싶다는.

-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10년 남짓한 짧은 음악감상력을 쌓아오게 됐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그 10년은 징검다리의 다음 돌을 찾아왔던 여정이라고도 느낍니다. 극히 평범하고 어렵지 않았지만 딱히 마음먹은대로 잘 되어왔던 인생이라고 하기에도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과 가치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경험상, 사실 징검다리의 돌 하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근거로서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고 생각했죠. 그 돌이 엄청나게 커서 평생 그 위에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보통사람중에서도 그냥 보통사람입니다. 그런 천부적인 기재도, 노력하는 재능도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나름의 사는 근거를 찾는 법을 알려주고, 그 길을 보여준 것은,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이 주는 셀 수 없이 많은 결들이었습니다. 정말 운이 너무 좋아서, 음악을 들으며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의 음악을 사이에 둔 관계가 하루 삶에 주는 풍부한 결들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아마도 병적으로 산만한 내가 아직까지 업으로 삼지도 않을 이 더러운 음악이라는 걸 여태 붙들고 살고 있고, 그 덕분에 겨우겨우, 남들은 철이 들고도 훨씬 지났을 나이에 아주 겨우, 살짝 단단한 근거를 딛고 사는 이 감각을 얻었습니다. 하루분의 징검다리를 건넌만큼의 다른 풍경을 보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 몇 트랙 되지도 않는, 그것도 3주만에 곡 쓰고 3일만에 번개불 콩 구워먹듯 녹음해치운 EP하나 내면서 음악으로 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졸필로 풀어보려고 낑낑대고 있는 이유는, 이 EP의 발매가 극도로 개인적인 경험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야심도 없이 뭘 배운답시고 지훈형의 작업실을 들락거렸고, 역량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나름의 미학이란 걸 담고자 밤새워 곡 쓰고, 키보드 팔아가며 녹음하고, 밥먹을 돈 아껴가며 마스터링까지 해 놓은 이 모든 작업들이, 사실 단순한 음악 씹덕질, 즉 사는 근거를 찾고자 했던 음악감상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도, 라이브연주 한답시고 세션들의 시간을 많이 뺏지도 않았던 것은 물론 돈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출발선상에서부터 이것은 내 발 하나 디딜 다른 징검다리돌을 찾는 여정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 위에 서서 나를 키워준 수많은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곡 되지 않는 이 EP는 경험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 이야기들이 쌓인 또하나의 큰 경험입니다. 나와 음악적 경험을 함께 한 모든 분들께, 미숙함과 준비가 부족함에 대해 죄송하고, 이런 곡들이나마 쓸 수 있게 이끌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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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4 16:45 2012/10/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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