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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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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척에서 군생활을 하던 시절 - 불과 몇 개월 전이지만 -,  가끔 야간 경계근무 도중 하늘을 보면, 가리는 것 하나 없는 엄청나게 넓은 하늘에 쏟아질 것 처럼 많은 별이 보였습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그 하늘을 보면서, 세상의 거대함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했어도 느끼지 못했던 흐름속의 나 라는 감각을, 짓눌릴 것 같은 넓고 검은 하늘에서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누구나 빛나던 시절의 추억 한두개 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고, 절로 흐믓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그 기억이 시간속에 부식되어 가고 잊혀지면, 사람들은 자신을 '어른이 되었다'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나태한 자신에 대한 자기합리화일 따름인데 말이죠.

3. 신카이 마코토 작품속의 인간들은 상당한 거리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고양이, 몇 광년이나 떨어진 여자친구, 닿을 수 없는 탑. 초등학생에게는 너무나 먼 가고시마와 토치기라는 물리적인 거리, 태양계 끝을 보는 남자와 당장 보이지 않는 내일에 무기력해 하는 여자. 닿고싶어하는 사람과의 거리감은 인간을 당황하게 합니다. 초조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죠. 하지만 그 거리가 일순이라도 해소되는 순간, 사람은 그 거리감을 받아들이게됩니다. 좁히지 못해 안달복달했던 기억은 추억이 되고, 당장 내일은 못 보지만 태양계의 끝을 보면서 그 추억을 동력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것이겠지요.




초속 5cm는 그동안 신카이마코토 감독이 반복해왔던 작업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도 있고, 별의 목소리도 있고, 구름의 저편도 있습니다. 의외로 '남녀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연출'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연출이 더욱 정적인 느낌이 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한계도 어느정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유의 석양빛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진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연출법은 여전하지만, 구름의 저편에서 상당히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작화는 다시 별의 목소리 시절이 민둥이 얼굴로 돌아갔고, 캐릭터들이 동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작화품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적인 연출에 지나치게 치중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툭까놓고 말하면 그냥 작화스텝의 실력문제라고 생각되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배경의 연결과 사운드만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와 자아내는 정서는 가히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사도 드문드문 있고 캐릭터도 거의 안움직이는데, 템포는 확실히 잡혀있고 흐름도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신카이 마코토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왔던 같은 메세지의, 같은 풍의 작품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연출력에는 힘이 느껴지고 점점 발전되어간다는 인상을 받기는 하지만, 이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고 하면 더 이상 신카이 감독의 차기작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구름의 저편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2D작화 문제도 어떻게 좀 했으면합니다. 기대하고 갔던 만큼은 건져 왔지만, 아쉬움은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몇 가지 미싱링크



더해서 초속5cm에 삽입된 곡은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라는 유명한 명곡인데요, 사실 저는 이 노래가 나오면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고요?

이걸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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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12:32 2007/06/2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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