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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더 지니어스 시즌2 7화 리뷰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홍진호가 스포츠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면서도 위대한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판의 초창기에는 스타일리스트들이 득세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이른바 완전체 양산형들이 치고 올라오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점이 있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한두가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모든부분에서 평균 이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결국 뒤쳐지게 마련입니다. 임요환, 홍진호, 변길섭등 극초창기 스타일리스트들은 결국 이윤열로 대표되는 운영형 완전체들에게 밀려 사라지게 되죠.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으로 상대적으로 긴 커리어를 구가했던 선수가 임요환과 홍진호였고, 그것이 이 두 선수가 지금까지도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스포츠판의 흐름속에서도, 홍진호라는 선수 개인으로서도 2003년 올림푸스 스타리그는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 시즌의 우승자 서지훈은 최초로 등장한 완전체형 우승자였습니다. 퍼펙트 테란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서지훈은 전략, 물량, 운영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기량을 가진 선수였고, 반대로 말하면 어느 하나 특출난 것이 없는, 양산형 선수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래도 당시 4대 테란중의 말석를 꿰어차고 있었고, 거의 2008년도까지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여 지금은 CJ엔투스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지만, 서지훈의 우승은 본격적으로 스타일리스트형 선수들에게 종말을 고하고 본격적인 기량의 양산화 - 프로페셔널리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 시즌은, e스포츠팬이라면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홍진호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시즌입니다. 1경기가 홍진호의 우세속에 서지훈측 컴퓨터 에러로 재경기가 이루어졌고, 홍진호는 5경기에 사용하려던 전략을 1경기 재경기에 사용할 수 밖에 없었죠. 결국 폭풍같은 목동저그로 1경기를 따내지만, 5경기까지 늘어지면서 이미 가져온 카드를 하나 손해본 홍진호는 마지막 세트에서 패배, 2:3으로 우승을 서지훈에게 넘겨줍니다. 이 때 1경기는 홍진호가 충분히 우세하다고 볼 수 있었고, 2006년에 결국 우세승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재경기에 대한 클레임정도는 해 볼 수 있었을 법 하지만, 홍진호는 치명적인 손실을 감수하면서 두말없이 재경기에 임했죠.

이것이 왜 홍진호가 매력적인 인물인가, 더 지니어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란이 지난시즌 최종매치에서 홍진호를 평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네요. “깨끗한 플레이를 전략적으로 하는 사람”. 다른 선수들이 더러운 승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닐테지만, 홍진호만이 가질 수 있는 승부의 형태를 표현하자면 이 깨끗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듯 싶습니다. 그는 승부를 자신의 위에 놓지는 않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홍진호, 방송 출연자로서의 홍진호가 승부욕때문에 뒷전으로 놓이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결승무대에서도 보통사람으로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압도적인 재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승부사. 임요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듯한 승부도 아름답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룰을 어기지 않고 승부하는 홍진호가 저는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까지의 논란이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이번 주의 지니어스는 본래의 형태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주는 단순히 게임이 개 구리고 홍진호가 얍삽이 쓰다가 자폭해서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안에서의 할 이야기를 다 해냈고, 데스매치에서 적어도 상대와 동등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유도해낸 은지원은 이번 주의 역대급 데스매치를 만들어 낸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봅니다. 지니어스는 홍진호가 쌓아올린 방송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지니어스의 주인공은 홍진호죠. 이제 그를 떠나보낸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이번주에 그랬던 것처럼, 홍진호가 보여주지 못했던 다른 승부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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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9 11:32 2014/01/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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