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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서글픔

2007/01/18 20:53, 글쓴이 Soloture
1.

얼마 전, 모처럼 대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를 하면 음악이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이 곳 분위기인지라, 음악 틀 사람도 없고 해서 - 이정도로 소프트한거면 애들도 그냥저냥 듣고 넘기겠지 하면서 존 레전드 Save room앨범을 걸어 놓았습니다.
뭐 한 8번트랙 갈 때까지는 잘 듣더랬습니다.. 근데 8개월 후임놈 - 상병 3호봉놈이 - 다른데 청소하고 생활관 들어와서 잠깐 듣고 있더니 CD케이스를 훌떡 뒤집어 보더군요.

"이게 뭐야. (오디오를 팍 끈다) 남들이 아는 노래좀 들으십쇼."

"아니 야-_- 그렇다고 그냥 끄냐"

"아 저게 뭡니까. 남들이 아는거 좀 들으십쇼. 맨날 자기만 아는 거 들어"

(화가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함) "아 시박. 난 늬들듣는거 별로 관심 없거든"

"아 그럼 관심 없으십쇼"

그 다음은..

스위치 올라가고 뚜껑 열렸다고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

모 후임녀석은 저와 장난칠 때 저를 보고 '오타쿠'라고 자주 부릅니다. 근데 이 오타쿠라는 말이 그 친구에게는 ㅄ정도의 포스를 가진 단어인지, 한 번 저를 그렇게 불러 놓고는 (혹시나 제가 화를 내지 않을까) 굉장히 눈치를 살피는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인데 말이죠.




1번의 경우, 후임의 버릇없음에 대해 물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에 더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예. 저 남들이 안듣는 음악 듣습니다. 남들이 애들 문화라고 무시하는 게임과 만화 들이 팝니다. 남들이 안 보는 책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강권하지도 않았고, 생활관 오디오로 제 음악 튼 적도 없고, 민폐라면야 RPG를 플레이 하는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태도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 후임녀석, CD한장 살 줄 모르고, 영화티켓은 데이트용이고, 책은 죽어도 안 읽는 심각한 문화적 빈곤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친구가 어째서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저렇게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까요.
뭐 그걸 떠나서, 남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무언가를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공격할 수 있는 걸까요. 그냥 저 친구의 정신연령 문제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실망스러웠습니다.

2번의 경우, 역시 저 후임 또한 오타쿠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 문화 일반에 대해 전혀 무지한 친구입니다. 막연히 오타쿠는 기분나쁜 존재 정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더군요.
저는 그 사실에 대해 또 한번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오타쿠의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두 예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저 두 친구가 적어도 어떠한 잣대를 들이대려면 대상에 대해 숙고를 하고 이해를 통해 소신을 세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존중의 태도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거기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지요. 마치 오덕후는 기분나쁘니까 끄지셈 하는 것 처럼.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경청하고, 숙고하고, 이해하고, 건전하게 대화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기 싫다면, 적어도 존중은 해 주세요.



이해받지 못한다면, 그래서 외롭다면,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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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8 20:53 2007/01/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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